비임상 시험을 처음 맡았을 때, 저도 착각을 했습니다.
“좋은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 시험책임자(Study Director, SD)의 역할이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막상 시험이 시작되면 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의뢰자(Sponsor)는 일정을 묻고, 내부 팀원은 우선순위를 묻고, 관련 부서 및 시험장소는 업무 범위를 묻습니다. 데이터를 만들기 전에, 이 모든 것을 조율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 사람이 바로 “SD(Study Director, 시험책임자)”입니다.
오늘은 SD가 왜 단순한 과학자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PM)여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Tip 1. 비임상 시험은 처음부터 하나의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란 정해진 기간 안에, 정해진 비용과 범위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업입니다.
이 정의를 비임상 시험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시험계획서(Protocol) 작성부터 최종 보고서(Report) 발행까지,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의뢰자와 합의된 비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인도해야 할 결과물(최종보고서)이 있습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SD는 매일 눈앞의 업무만 처리하다 하루가 끝납니다.
많은 SD가 여기서 막힙니다. 과학적 역량은 충분한데, 시험 전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이 프로젝트 삼각형입니다.
| 제약 요인 | 비임상 시험에서의 의미 |
|---|---|
| 범위(Scope) | 시험 항목, 군 구성, 관찰 지표 |
| 비용(Cost) | 시험 예산, 인력 투입량 |
| 일정(Schedule) | 투여 시작일, 부검일, 보고서 제출 기한 |
| 품질(Quality) | 세 요인의 균형 중심에 위치 |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변하면, 나머지 두 개와 품질에 반드시 영향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스폰서가 갑자기 범위를 늘리면, 비용이 늘거나 일정이 밀립니다. 비용은 그대로인데 일정을 당기면, 품질이 흔들립니다.
SD는 이 균형을 조율하는 사람입니다. 의뢰자의 요청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삼각형의 균형을 짚어주는 역할인 셈이지요.
A군: “그러면 일정이 바뀌었을 때 SD가 직접 비용 협의도 해야 하나요?”
M형: “맞아. 범위가 바뀌면 비용과 일정도 같이 재검토해야 해. 그 대화를 먼저 꺼낼 수 있어야 진짜 PM이지.”

마일스톤(Milestone) 개념도 여기서 중요합니다. 투여 개시일, 혈액 채취일, 부검일 같은 시험의 주요 분기점을 마일스톤이라고 합니다. SD는 이 마일스톤을 기준으로 진행률을 모니터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됐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간트 차트나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하면 단계별 지연 요인을 시각적으로 파악하기 훨씬 수월합니다.
Tip 2. SD의 진짜 역할은 ‘단일 통제 지점’입니다.
SD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인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팀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조직이라면 팀장이 “이렇게 하세요.”라고 지시하면 됩니다.
그런데 SD가 이끄는 팀은 내부 인력 뿐 아니라 의뢰자, 시험 모니터(Study Monitor), 주임시험자(Principal Investigator), 위탁 업체(Subcontractor)까지 포함합니다. 이들은 각자 다른 조직에 소속되어 있고, SD에게 보고 의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시험의 기술적 실시, 데이터 해석, 보고서 발행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모두 SD에게 있습니다.
이 구조가 바로 “단일 통제 지점(Single Point of Control)”입니다. 모든 정보와 판단이 SD를 통해 흐르고, SD가 최종 책임을 집니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두 가지 기술이 필수입니다.
첫째, 조직화 기술입니다.
업무가 몰리는 시점에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면, SD는 늘 급한 일에만 끌려다닙니다. 경중에 따른 시간 관리(긴급함 vs 중요함)을 활용해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업무를 미리 처리해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둘째, 의사소통 기술입니다.
저도 초반에 가장 많이 놓친 부분입니다. SD는 시험 설계 변경이나 일정 지연이 생기면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알릴지를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이것을 의사소통 계획이라고 합니다.
모든 전화 협의 내용은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메일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해 시험 기록에 보관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말 뒤에 담긴 의도까지 파악하려는 적극적 경청이 필요합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팀원은 방향을 잃고, 의뢰자는 신뢰를 잃습니다.
Tip 3. ‘나쁜 소식’을 빨리 전하는 것이 SD의 신뢰를 만듭니다.
비임상 시험을 하다 보면 반드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깁니다. 예상 밖의 독성이 나타나거나, 일정이 밀리거나, 데이터에 문제가 생기거나.
처음엔 “좀 더 파악하고 보고하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나쁜 소식은 늦어질수록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관리자와 의뢰자에게 보고하면, 그 순간은 불편해도 함께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늦게 보고하면 선택지가 줄어들고, 신뢰까지 잃습니다.
문제를 보고할 때 태도도 중요합니다.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비난보다 해결책을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신뢰를 얻습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습관의 문제입니다.
성공적인 비임상 시험의 구성 요소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구성 요소 | 핵심 내용 |
|---|---|
| 시험계획서 | 관련 인력 의견 반영, SD가 단일 통제 |
| 자원 | 각 활동에 적절히 배분된 인력 |
| 일정 | 측정 가능한 마일스톤, 약속된 납기 |
| 비용 | 의뢰자와 합의된 예산, 범위 변경 시 재협의 |
| 품질 | 팀 전체가 높은 품질의 보고서를 목표로 헌신 |
SD를 과학자로만 보면, 관리 업무는 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SD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보면, 관리 업무 자체가 시험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역할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시험의 마일스톤을 한 번 정리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일정이 시각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